넷플릭스 드라마 '브리저튼' 의 배경이 되는 영국 상류사회에는 픽션이지만 흑인 왕족과 귀족들이 심심지 않게 등장한다. 극을 이끌어가는 아주 중요한 인물인 이들을 보면서 실제 역사에서도 이런 일이 가능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궁금증이 든 것은 나 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브리저튼보다 50년 정도 빠른 18세기에 귀족가의 일원으로 존재했던 흑인 영애가 있었다는 놀라운 사실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이 그림을 보는 사람들은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을 것이다. 그것은 흑인과 백인이 같이 그려진 동시대의 다른 그림들과 비교해 친밀해보이는 것을 넘어 동등하게 표현되었다는 점이다. 이 이례적인 그림의 왼쪽에 그려진 흑인 여성이 이야기의 주인공 다이도 엘리자베스 벨이다.
1. 출생부터 맨스필드 백작저에 오게 되기까지
다이도는 1761년에 노예 신분의 아프리카 출신 어머니 마리아 벨과 해군 장교 아버지 존 린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출생지인 서인도 제도에서 4년간을 지낸 후 1765년에 린지는 다이도와 다이도의 어머니 마리아 벨과 함께 영국으로 돌아가 외삼촌 윌리엄 머레이 맨스필드 백작에게 다이도를 키워달라 부탁했다.
이것은 당시 사회 분위기로 볼 때 매우 어려운 부탁이었을 것이 분명했다. 이전에는 공식적으로 흑인 아이를 귀족 가정에서 양육했던 사례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맨스필드 백작이 어떠한 이유에서 마음이 이끌렸을지는 몰라도, 어린 다이도는 백작저인 켄우드 하우스에서 자라게 되었다.

2. 교육받은 여성 다이도
다이도는 어머니를 잃고 켄우드 하우스에 맡겨진 또 다른 조카 레이디 엘리자베스 머레이와 함께 교육받은 상류사회의 숙녀로 자라났다. 비슷한 처지의 이 둘이 얼마나 친밀한 사이였는지는 상단에 첨부한 초상화만 보아도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다이도는 상당한 지성을 갖춘 사람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스코틀랜드의 시인이자 철학자였던 제임스 비티는 그 영특함에 대해 이렇게 언급했다. "영국에 6년 동안 있었던 10세 정도의 흑인 소녀가 현지인(영국인)의 발음과 억양으로 말할 뿐만 아니라 그 나이의 영국 어린이라면 누구나 감탄할 만한 우아함으로 몇 편의 시를 반복하는 것을 보았다." [각주1]


다이도는 이러한 자신의 지적 능력을 잘 발휘했다. 그는 집안의 낙농장과 양계장을 관리, 감독할 뿐만 아니라 특별히 맨스필드 백작이 서신을 쓰는 것을 돕는 일을 담당했다. [각주2] 그것은 보통 남성 비서나 서기가 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백작이 다이도를 굉장히 신뢰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편지를 받아적는 일은 보내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의 시시콜콜한 정보까지 알 수도 있기 때문에 아무에게나 맡길 수 없다는 점에서 꽤나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3. 애매한 사회적 위치
호화로운 침실과 가구, 드레스를 제공받는 삶이었지만 다이도의 사회적 위치는 말 그대로 '애매했다.' 사생아라는 것에서부터 이미 여러 가지 사회적 제약이 있었던 것에 더해 아프리카 혼혈이라는 배경이 그를 더욱 애매한 존재로 만들었다. 그것에 대한 결과는 일상 생활에서도 나타났다.
다이도는 저택에 손님들이 방문했을 때 함께 식사할 수 없었는데, 그래도 다른 사람들처럼 식사 후 응접실에 커피를 마시러 오는 것은 가능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손님들과 식사하기에는 너무 낮고, 하인들과는 너무 높은 이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상황을 체감할 때는 쓸쓸한 기분이 들지 않았을까?


그 시대 유럽의 영애들은 결혼 적령기가 되면 으레 그렇듯이 사교계에 진출한다. 하지만 그것은 다이도에게는 허용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엘리자베스는 왕실 무도회와 파티에 참석했지만, 다이도는 엘리자베스의 계모가 주최한 무도회에도 불참했다. 사교계에 진출해 무도회에 참석한다는 것은 귀족 여성이 결혼 상대를 찾는 아주 중요한 과정이었다. 따라서 다이도는 귀족 남성과의 결혼이 불가능하게 되어 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다이도가 사교 활동에 얼마나 제약을 받았는지 보여주는 일화가 또 있다. 샬롯 왕비의(넷플릭스의 그 샬롯 왕비가 맞다.) 가정교사였던 메리 해밀턴의 일기에 따르면 1784년 봄에 해밀턴의 사촌인 스토몬트 자작부인과 그 의붓딸 엘리자베스가 칼튼 하우스에서 열리는 왕실 무도회에 초대받았다고 기록했지만, 다이도는 초대받지 못했다. 또한 해밀턴은 일기 내내 엘리자베스와 그의 이복 형제 3명, 맨스필드 백작 등 백작가와 관련 있는 사람들 거의 모두를 묘사할 정도로 여러 번 켄우드 하우스를 방문했지만 단 한 번도 다이도를 언급하지 않았다. [각주3]
*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
각주
[1] "a negro girl about ten years old, who had been six years in England, and not only spoke with the articulation and accent of a native, but repeated some pieces of poetry, with a degree of elegance, which would have been admired in any English child of her years."
[2] 제12대 매사추세츠만 주지사 미국인 토마스 허친슨의 언급. "She is a sort of Superintendent over the dairy, poultry yard, &c., which we visited, and she was called upon by my Lord every minute for this thing and that, and shewed the greatest attention to everything he said."
[3] "The Mary Hamilton Papers". Manchester Digital Collections. University of Manchester. Retrieved 13 January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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